주변은 죽음의 냄새로 가득했다.
강하늘은 가족의 잔해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차가운 바닥의 감촉이 피부에 스며들었지만, 그보다 더 서늘한 공포가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엄마… 아빠…”
그녀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갔다. 다시 그들을 부르려 했지만, 입술이 떨릴 뿐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흐를 것 같았지만, 눈물마저 나오지 않았다.
이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하늘은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어지러웠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멈출 수는 없었다. 그녀의 본능은 경고하고 있었다.
무언가 위험한 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불길한 발걸음 소리. 그 소리는 마치 사람의 것처럼 들렸지만, 사람이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이상했다.
‘살아남아야 해.’
하늘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곳에 머무르는 건 위험했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더 이상 이곳은 안전하지 않았다.
밖으로 나섰을 때, 하늘은 그제야 자신이 처한 세상이 완전히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거리는 피와 잔해로 가득했다. 건물은 반쯤 무너져 있었고,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형체는 더 이상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마치 거대한 짐승에게 찢겨 나간 듯한 흔적이 보였다.
하늘은 발을 내딛는 것조차 두려웠다.
‘어떻게 된 거지? 이건…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야.’
그녀는 두 손을 꼭 쥐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순간, 멀리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길 끝에서 나타났다. 처음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그것이 인간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 형체는 거칠고 비틀어진 모습으로, 피부는 짓물러 있었다. 피로 물든 손톱은 길게 자라 있었고, 입가에는 핏자국이 선명했다.
하늘은 본능적으로 숨을 멈췄다.
‘저건 뭐야…’
그 생명체는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거리를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그 괴상한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마치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변해버린 괴물 같았다.
하늘은 반사적으로 몸을 숨기기 위해 한 건물의 잔해 뒤로 몸을 날렸다. 숨이 가빠오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녀의 온몸이 긴장으로 굳어갔다.
‘제발, 지나가줘…’
그 생명체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늘은 가쁜 숨을 억누르며 조용히 몸을 웅크렸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괴물은 그녀의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갑자기 그 생명체가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하늘은 숨을 멈춘 채 가만히 있었다. 그 순간,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서 또 다른 생존자가 허겁지겁 달아나는 모습이 보였다.
괴물은 고개를 돌리더니 그쪽으로 향했다.
하늘은 그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해지진 않았다.
‘더 이상 안전한 곳은 없어.’
이 도시는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이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가족이 없는 지금, 아무도 그녀를 보호해줄 수 없었다.
하늘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하늘은 더 이상 익숙한 풍경이 아니었다. 그곳은 공포와 죽음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다잡았다.
‘난 살아남을 거야. 어떻게든.’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결심했다. 이제부터는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더 이상 가족에게 의지할 수 없었다. 오로지 혼자서 살아남아야 한다.
하늘은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우선 물이 필요해.’
생존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떠올렸다. 물, 음식, 그리고 안전한 장소. 그러나 이 무너진 도시에서 그 모든 것을 찾을 수 있을까? 그녀는 두려웠지만, 멈출 수 없었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피와 잔해가 넘쳐났고, 공기는 끈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몇 블록을 지나쳐 가던 중, 그녀는 가까운 편의점이 보였다. 무너진 건물 사이에 어찌어찌 서 있는 작은 공간. 그곳에 식량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늘은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다가갔다.
입구로 들어서자, 내부는 이미 어수선하게 뒤엉켜 있었다. 선반들은 부서지고 물건들이 사방으로 널려 있었다. 생존자들이 먼저 와서 약탈해 간 듯했다.
하늘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작은 소리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그녀의 시선은 물병을 찾는 데 집중됐다.
그러나 그때, 편의점 안쪽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하늘은 순간적으로 몸을 굳혔다. 어두운 구석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그녀는 숨을 죽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타난 것은 또다시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괴물이었다.
하늘은 숨을 삼켰다. 괴물은 천천히 다가왔다.
녀석의 눈은 사람 같지 않았다. 텅 빈 눈동자와 뒤틀린 입가가 그녀를 향해 있었다. 하늘은 공포에 질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심장이 터질 듯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기서 무언가를 해야 했다. 그대로 있으면 죽음뿐이었다.
하늘은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순간, 발이 무언가에 걸렸다. 철컥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괴물은 소리에 반응하며 고개를 들었다.
‘안 돼… 들켰어.’
괴물은 바로 그녀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하늘은 재빨리 몸을 돌려 편의점 밖으로 달렸다. 가슴이 터질 듯 숨을 헐떡이며 무작정 뛰었다. 괴물의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살아야 해… 살아남아야 해!’
하늘은 필사적으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주변 건물들이 빠르게 지나갔고, 피 냄새가 그녀의 코를 자극했다. 숨이 가빠지며 시야가 흐려졌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얼마나 달렸는지 모를 정도로, 하늘은 정신없이 뛰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철저히 무너진 한 건물 뒤에 몸을 숨겼다.
하늘은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았다. 괴물은 보이지 않았다. 겨우 도망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겨우 첫 번째 위기에서 살아남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더 많은 위기가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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